[시]

파랑달팽이 5부작 - 1. 파

by [NGO]울림소리 posted Jan 30, 2019 Views 300 Likes 1 Replies 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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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파 -


- Fire, Fire at will


함 내 전투배치 신호등이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. 이미 배의 절반은 적들에게 점거당한 상태로 부 관제실과 하부 통로는 연료 보급관이 터져서 나온 불길로 너무 뜨거운 나머지 빨갛다못해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. 마음대로 발사하라고 지정하는 것을 보니 통합관제시스템에도 뭔가 이상이 생긴 것 같다.


나는 불길과 적들을 막으려 방폭문을 하나하나 닫으며 뒤로 물러서야 했고, 이제 내 뒤에는 함교로 통하는 통로를 가로막는 두꺼운 15센티짜리 경질칼슘소재로 되어있는 문만이 등을 받쳐주고 있었다.


그리고, 이 문은 전투시엔 절대 열리지 않는다. 특히나 함내에 적이 있을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. 나는 최소한 탄약이 다 떨어진 쇳덩이라도 들고 있지만 이 문 안에 있는 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 이다. 기계를 다루고, 작전을 짜고 머리를 굴리는 자들은 점액질같은 침을 튀기며 끈끈이라도 붙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.


내 뒤의 문이 뚫리면 이 배는 끝이다. 하지만 이 문이 열리지 않아도 나는 죽는다.


열기에 내 몸이 말라 비틀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. 몸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지 이 순간만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.


시원한 물 한 방울만 있다면 나는 연장복무와도 바꿀 의향이 있다. 어짜피 내가 무슨 빚을 이 자리에서 지든 그 빚을 갚아야 할 일이 없음을 알고 있으니까.


방금 잠그고 온 방폭문 건너편에 적들이 들이닥쳐 있음이 느껴진다. 나는 무기는 있으나 탄약이 없으며, 의지는 있으나 육신이 없는 자가 되어버렸다. 


방폭문 구석이 붉게, 노랗게, 파랗게, 하얗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며 내가 그 혹은 그녀와 온 몸을 붙여 비벼대며 끈적하게 달아오르던 순간이 스쳐지나갔다. 미안, 안녕.




순간 하얀 분말이 방폭문에 난 구멍을 통해 물밀듯이 분사되었고, 마지막으로 무장한 달팽이가 소금을 맞고 죽어버렸다.


무장한 인간 6명이 문을 열고 달팽이의 시체를 입구쪽으로 걷어낸 뒤, 달팽이의 껍질과 같은 칼슘 벽을 녹이는데는 시간과 노력이 조금 걸렸고, 더 적은 노력으로 함교를 청소하는데 성공했다. 그리고 그 거대한 전투함선은 인간의 손에 들어왔다.


- 썬더, 썬더, 썬더 여기는 썬더 액츄얼. 탈취에 성공했다.


- 썬더 커맨드, 수신 확인. 다음 단계로 이행하라.



2편 - 랑에서 계속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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